[국내컨퍼런스] 동아시아의 사회적 기억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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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오늘날 동아시아는 기억이 지배하는(memocracy) 공간이라는 명제로부터 시작한 학술회의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한국의 기억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어떠한 기억을 둘러싼 갈등이 오늘날 동아시아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 기억은 어떻게 대중들에게 소비되고 있는가? 장래 어떠한 공간이 새로운 기억의 장소가 될 것인가? 학술회의는 동아시아 사회적 기억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장이었다.

1992년부터 한국의 기억연구를 주도해 온 서울대 사회학과의 정근식 교수는 사회적 기억연구가 제국과 식민지, 국민국가의 형성, 민주화, 세계화 등 시간의 다층적 국면을 다루는 연구이며, 지방, 국가, 민족, 지역, 세계로 이어지는 다양한 공간적 스케일 속에서 기억의 변화를 탐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발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20년간 지속된 <사회와역사> 속 기억연구들의 특징에 관한 연구였다. 구술보다는 기념비 연구에, 개인의 기억보다는 집단 기억 연구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은 사회학계, 특히 <사회와역사>에 다수 게재되었음을 드러내고, 다양한 질적 방법론 연구와의 접속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음을 드러냈다. 이어지는 화성 제암리 31운동 기념공간의 변화에 관한 연구는 해당 기념공간이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반, 1990년대 중반, 2010년대 초반에 걸쳐 지속적인 변형을 경험하며, 권력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지역, 국가, 일본, 캐나다 등 다양한 공간 스케일이 중첩되면서 기억의 변형과 ‘덧댐’이 형성됨을 보여주었다. 오전 세션의 마지막 발표는 미군 기지촌 여성의 기억을 다룬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통해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기억을 재현하는 문제를 두고 이를 연출한 감독 박경태와 사회학자 김한상의 대담이 있었다.

유네스코라는 조직은 두 번의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그러기에 문화유산의 선정에 있어 인류 보편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인류’와 ‘보편성’을 표방함으로 인하여 동아시아에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국가의 지위 향상의 도구로 삼거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보편주의적 이상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유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과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민족 간 갈등의 장이 되었다. 산업발전의 맥락을 강조하는 일본 정부와 달리, 한국 정부는 그곳에 강제 동원되어 희생당한 이들의 기억이 망각되었음을 지적하며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초국경적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주의와 발전사를 넘어선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한국 등에 위치한 한센인 수용소에서 등장하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기억은 이제 미디어와 만나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하여 볼 수 없는 곳, 갈 수 없는 곳을 기억하고 재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DMZ라는 금단의 땅을 새로운 기억의 영역으로 만드는 과정과, 차이나타운을 포함한 이주자들의 공간을 새로이 드러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기억과 재현의 새로운 영역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없었던 가능성을 부여받은 이 공간이 과거보다 한층 더 복잡한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짐을 확인하였다.

노스텔지어와 레트로는 오늘날 동아시아 대중들이 기억을 소비하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다. 기억이 오늘날 얼마나 중요한 사회현상이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개념들인 것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중국의 마오 노스텔지어로, 이는 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던 엘리트로 기능했던 청년상에 대한 기억을 통하여 소외를 극복하려는 욕구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었다. 시티팝 역시 매우 중요한 노스텔지어 현상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1980년대 일본에서 발달한 음악들을 소비하면서 이를 ‘아시아적인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